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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수업

ZERO_DOT 2022. 3. 3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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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수업

하루에 하나, 나를 사랑하게 되는 자존감 회복 훈련

- 윤홍균 -


나는 행복의 의미는 무엇이고,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지,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지 등을
시간을 갖고 기록해나갔다.

 

자존감은 행복의 결과물이기도 하고, 자존감의 결과가 곧 행복이기도 했다.
자존감이 회복된다는 말과 행복해진다는 말은 같은 의미였다.

 

자존감의 가장 기본적인 정의는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self-esteem)다.

 

우선 ‘자기 효능감’은 자신이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 느끼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 사회는 이 축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두 번째 ‘자기 조절감’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본능을 의미한다.
이것이 충족돼야 자존감도 높아진다.

 

세 번째 ‘자기 안전감’은 자존감의 바탕이 된다.

 

자존심은 자존감과 연관된 감정을 뜻한다.
자존감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관한 답, 즉 생각의 개념이라면,
이에 수반되는 감정을 자존심이라고 부른다.

 

비난을 받거나 트라우마가 생겨 일정 선 밑으로 감정이 추락하는 것을
‘자존심이 상한다’고 표현한다.

 

자존감은 셀프로도 회복할 수 있다.

 

자존감 회복의 목표는 흔히 말하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거나 ‘자뻑남’ ‘자뻑녀’가 되는 게 아니다.
이들처럼 지나치게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을 ‘자기애성 인격장애인’(나르시시스트)이라고 부른다.

 

자존감은 자신을 어떤 높이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느낌이다.
이 느낌은 생각이며 판단이지만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유동적이고 시시때때로 변한다.

 

남의 인생은 모두 쉬워 보인다.

 

누구에게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지만 누구도 진심으로 고민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래서 사람들은 함께 있으면서도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린다.

 

우리는 모두 외떨어진 섬처럼, 각자의 고민을 안고 외로워한다.

 

성장은 자존감을 획득하는 과정이고, 자존감을 갖추면 사랑부터 찾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존감이 무너지면 사랑에 대한 능력부터 의심하게 되어 있다.

 

놀랍게도 자신의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결혼을 강렬히 원하면서도 기피한다.

 

자신이 과연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지, 한 사람과 오래 사귈 수 있는지 자신 없어 한다.
자신은 연애 불능자라고 단정하고서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없고, 사랑받지 못할 거라고도 말한다.
그러니 사랑을 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자신이 사랑받을 수 없다는 믿음은 망상에 가까워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냥 지난번 사귀던 사람하고 쭉 가볼 걸 그랬나?’ 하고 후회한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지났고 흐른 시간만큼 나이도 먹었지만 떨어진 자존감만 그대로다.

 

이들의 문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고 후회하면서도 자신이 사랑 부적격자라고 믿는 데 있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될수록 자기비하는 더욱 견고해진다.
궁극적으로 자신을 더 믿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비극이다.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는 일은 ‘신뢰’라는 감정에서 출발한다.

 

누군가에 대한 본능적인 믿음을 기초 믿음(basic trust)이라고 부른다.

 

겉으로는 상대를 사랑해서 힘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을 믿지 못해서 괴로운 것이다.

 

세상에 사랑받을 만한 자격과 가치로 똘똘 뭉친 사람은 없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도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 데도 쓸모가 없는 사람도 없다.
단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쓸모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종이 한 장을 꺼내 자신의 장단점을 적어보면 된다.
특히 대체 자신의 어떤 점이 사랑받을 수 없다고 믿는지, 어떤 점을 믿지 못하는지 마음속에서 꺼내 바라보자.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사랑스러워!”라고 아무리 외친들 사랑이 갑자기 솟아날 리 없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똑같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를 아는 만큼 사랑 능력도 커진다.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것부터 시작하자.

 

돌이켜보면 그때 무기력에 시달리던 것보다 더 괴로웠던 게 있다.
바로 나 스스로 내 상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한없이 나약해 보이고, 의지도 없고, 승부욕도 사라진 내가 싫었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내게 중요한 사람이라 해도 그 사람 때문에 나 자신을 사랑하길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에게 고통과 불행을 안겨주는 사람들과 이별할 때는 단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나도 내가 이해가 안 되는데 남들에게 이해해달라고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마치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와 함께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외로움이 찾아와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혼자 여행을 가서도 마치 둘인 양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내가 곧 나의 든든한 보디가드인 셈이다.

 

인생을 조금 편하게 살고 싶다면 평소 자신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자주 해줘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잘못된 사회 탓이고 잘못된 교육 탓이다.
투사해도 괜찮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에게 관대해져야 하고 합리화해야 한다.
“자기안위에 빠져도 괜찮아”라고 말해줘야 한다.

 

그저 “괜찮아. 그동안 수고했어”라고 얘기해주면 된다.
지금 당장 그게 되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우린 이제 첫발을 떼었을 뿐이니까.

 

처음엔 의심하며 만나다가 나중엔 매달리는 형국이 된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강렬한 사랑이라고 믿는데 사실은 집착이다.
집착은 병이다.

 

그중 상대를 사랑하는 이유가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니까’밖에 없는 경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말 속에는 ‘나를 사랑해주는 건 상당히 특별한 일이야. 남들은 그러지 않거든’ 하는 뜻이 들어 있다.

 

‘나를 사랑해서 사랑한다’는 원래 자신은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데 이 사람만 특이하게 나를 사랑한다는 뜻을 포함한다.

 

연인들이 다투는 이유는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는 명제에 의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기념일을 안 챙겨줘서, 약속을 안 지켜서, 전화를 자주 안 해서 등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건 사랑이 식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은 똑같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의 말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예컨대 “왜 이렇게 늦었어?”라는 말에는 시간을 안 지켰다는 질책만이 아닌 ‘내가 가치 없는 존재니까 약속을 어기는 거야’라는 의미까지 숨어 있다.
‘사랑에 취했을 땐 그러지 않더니 내 정체를 알아버려서 사랑이 식은 거지’라는 불신도 섞여 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상대는 약속 시간에 늦은 이유뿐 아니라 사랑한다는 사실, 앞으로도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까지 설득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반응하는 것만도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라 이후의 행동을 바꾸거나 의견을 맞춰가는 데까지는 갈 엄두가 안 난다는 점이다.

 

사랑을 한다는 건 거기서 얻는 행복만큼이나 큰 에너지를 요하는 감정이다.
이때 그가 진짜 나를 사랑하는가, 내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가 하는 고민을 하지 않으면 그만큼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데 쓰인다.

 

사랑을 지키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매번 고개를 떨구는 이유 중 하나는
결정적으로 ‘내가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를 잊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확신이 약하면 상대를 생각해야 할 때 나를 생각하고 나를 생각해야 할 때 상대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자신에게 선물을 줘보자.
나에게 가장 적당한 선물은 무엇이고, 무엇을 받으면 가장 기뻐할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일단 선물을 골랐다면 “잘 골랐어! 난 참 선물도 잘 골라!”라고 칭찬까지 해주자.
나 자신을 사랑하는 길에 한발 더 다가설 것이다.

 

살면서 한 번도 싸우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자주 싸우는 게 당연하다고, 사랑하니까 싸운다고 합리화해서는 곤란하다.

 

사귄 지 1년이 지나도 싸움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각자 자존감을 체크해야 한다.

 

싸움에서 이겼다고 해도 문제다. 제압한 상대가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뛰어난 언변과 논리로 남편을 제압한 부인은 ‘남편은 나보다 논리적이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긴 기쁨은 잠시뿐, 논리적이지 않은 남편과 사는 자신에게 만족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진 쪽은 더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말싸움에서 밀리든 힘에 밀리든 제압을 당한 쪽은 자괴감에 빠진다.

 

커플은 팀이다. 아무리 좋은 팀이라도 불화와 갈등은 있다.
하지만 팀 킬은 가장 어리석다.
시비를 가리고 공격을 주고받는 사이 팀이 패배하기 때문이다.
자신은 억울하고 속상하겠지만 남의 눈에는 ‘저 팀은 형편없는 팀’으로 보일 뿐이다.

 

혼자 연정을 품거나 호감을 느끼는 건 본능적인 감정이다.
그런데 연애는 다르다. 느낌이 아니라 판단이다.
짝사랑은 감정이지만 연애는 결정이다.
그래서 자신의 판단력을 믿지 못하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만큼 가깝고, 남들이 모르는 부분까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심하고 싸우자면 상대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을 남길 수 있다.
쥐꼬리만큼 남은 자존감마저 앗아가는 게 사랑싸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까운 사이일수록 공격할 거리도 많고 의심할 것도 많다.
“넌 항상 그게 문제야. 그러니 회사에서도 그 모양이지”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랐으니 너도 뻔하지” 식으로 직접적인 공격이 오가기 쉽다.
따라서 사랑싸움은 내상이 더 크고 깊다.
말로, 마음으로만 다퉈도 정신은 탈진한다.

 

사랑하는 이와 제대로 된 사랑을 주고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아픔이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사랑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란 환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거가 불행했던 사람일수록 사랑을 통해 상처를 회복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가끔 듣는 사랑한다는 말이나 근거 없는 느낌에 기대어 심약한 사랑을 유지한다.
‘이 사람 말고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란 생각, ‘이별을 감당하지 못할 거야’란 생각은 전쟁 같은 사랑일지언정 완전히 끝나지 않도록 강력한 방어막을 친다.

 

사랑하는 상대를 시험하거나 괴롭히지 말고, 지금 사랑하고 있다면 더 사랑하게 해달라고 빌어야 한다.

 

사랑은 워낙 복잡한 감정이라서 종종 혼란을 야기한다. 의심이나 속박을 사랑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땐 맘껏 사랑하기를 바라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매일 잠들기 전에 “이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보자.

 

자기연민에 빠지는 건 술에 취한 상태와 흡사하다.
‘불쌍한 내 인생, 아이고 불쌍한 내 인생아!’라며 술을 마시듯이 감상에 젖는다.

 

스스로를 불쌍한 존재로 인식하면서 자신을 위로하고 위로받는 생활에 갇혀버린다.

 

혼자 있는 것은 외로운 것이며, 외로움은 곧 괴로움이라고 간주한다.
혹은 자신은 혼자서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고 믿는다.
이들은 자신을 ‘나약하고 여려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라고 단정하기 때문에
상대가 못났어도 이별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원래 힘든 일이다.
지금 당신이 이별 때문에 힘들다면 그건 이 세상 모든 인류가 겪는 고통이다.
그리고 그 고통을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겪어낸다.

 

자신이 이별에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에 대해 너그러워지기를 바란다.
몇 날 며칠 우는 사람도 있고, 괜찮은 듯 웃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화를 내는 사람들도, 무덤덤한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화를 내면 안 된다거나, 참으면 안 된다거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칙 같은 건 없다.

 

혼자가 됐다면 마침내 자유를 누릴 기회가 생겼다고 보면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즐겁지만 그만큼 제약이 따른다. 내가 받는 것만큼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러다 혼자가 되고 나면 드디어 자신을 맘 놓고 돌볼 수 있다.
상대의 동의도 필요 없고 때로는 거슬렸던 충고와 간섭 따위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면 이번 사랑에서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때다.

 

이때 부정형 목표가 세워져 있던 사람들은 나쁜 생각을 떠올린다.
자신이 사랑받을 수 없는 이유를 떠올리면서 부정적인 상황에 집중한다.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의 문제점에 집중한다.

 

누구나 내면에 문제가 있다.
남들이 알면 놀랄 욕망도 있고, 욕심도, 질투와 시기도 숨어 있다.
자신감이 결여돼 있기도 하고, 기대고 싶은 의존 욕구도 있다.
다만 감추고 있을 뿐이다.

 

당신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다.
시험을 못 봤다고 해서 나쁜 학생이 아닌 것처럼.

 

자신에게 참 미안한 일이다. 따라서 일단 사과부터 해야 한다.
그것이 자존감이 낮았던 ‘과거의 나’와 노력 중인 ‘현재의 나’의 차이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변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사랑은 원래 나랑 안 맞는다거나 사랑은 괴로운 거라고 쉽게 단정 짓거나 일반화하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는 자신의 가치에 대해 잊고 산다.
누구나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할 존재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막상 “당신은 가치 있는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

 

자신의 가치란 반드시 누구에게 인정받아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생활에는 뚜렷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언제, 어디까지, 어떻게 해야 가치를 인정받는지 알려주는 길잡이가 없다.
뚜렷한 성적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인기투표를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기도 어렵고 그것을 느끼기는 더 어렵다.

 

평가는 나중의 일이고 과정은 현재의 일이다.
과정에 집중한다는 건 결국 오늘 할 일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일이다.

 

자존감은 ‘내가 내 마음에 얼마나 드는가’에 대한 답이다.
그러기 위해선 타인의 평가가 아닌 ‘자신의 평가’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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