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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약속도 없이 사랑을 하고 본문

우리는 약속도 없이 사랑을 하고

ZERO_DOT 2022. 3. 3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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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약속도 없이 사랑을 하고

기약 없이 찾아온 사랑과 슬픔을 견디는 마음에 대하여

-정현우 -


떠난 사람들이 찾아와 잠긴 문을 두드리는 날에 나의 문장은 쓰였다.
우리의 슬픔과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슬픔은 지금을 쓰고 사랑은 과거를 쓴다.

 

사랑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의 웅덩이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
물속에서 수면 위로 떨어지는 낙엽을 올려다보는 것,
그리고 함께 휘청해보는 것이라고.

 

꿈꾸는 것은 항상 망가진 장난감 같은 날들에게

 

나이가 든 사람의 굽은 등을 보면 고개를 낮추게 돼.
상실이 계속되는 날들을 어떻게 견디며 왔을까.
내가 아무리 나이를 더 많이 먹어도 바꿀 수 없는 현실은 여전히 아픈 것들은 눈이 부시다는 거야.

 

나이가 들수록 인정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는 각자의 소년에서 머무르고 싶을 거야.

 

우리는 죽기 직전까지 사랑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게 돼.
사람의 마음은 그런 것이니까.

 

나는 죽어본 적이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나는 살아 있다 살아 있다 여러 번 반복하는 일.

 

우리는 한 번씩 엄마를 가져봤으니까, 그리고 다시 엄마를 잃어버리는 운명을 가졌으니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끝은 없다고 엄마의 손을 붙들어보는 것, 그런 거겠지.

 

그래, 사랑의 모든 관계에는 시간 안에 끝내야 하는 끝나고 마는 유통 기한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이 사랑이듯 내가 나이듯 네가 너이듯 그냥.

 

서로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걸어가는 것.

 

한번 잡은 손은 놓지 않는 것.
이미 식어버린 사랑에 온기를 더해 보는 것.

 

당신은 나를 얼마나 아파했는지 사랑을 열어 슬픔을 확인해보는 것.

 

나는 사랑의 자리에서 당신은 슬픔의 자리에서 서로의 심장을 움켜쥐는 것.

 

사랑은 습관이 될 수 있으나 이별은 습관이 될 수 없으니, 그래서 잊는다는 건 성실하게 앓는 것.
우리는 묵묵히 흐른다.
아주 평범하고 성실히.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계절의 경계가 자연이 가진 가장 외롭고 아름다운 선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 사이에 얼음 장막을 한 꺼풀 벗겨내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를 떠난 것들이 너무 많아
어쩔 도리가 없이 그 자리에 얼어버리게 되는.

 

기어이 살고 싶은 생각과 죽어버리고 싶은 밤이 있어 생의 가치는 충분하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에 헤어짐이 시작되는 벚꽃의 시간이 인간의 생과 닮아 있다는 생각.

 

생은 이토록 징그럽고 아름답다.

 

슬픔이나 사랑 같은 단어 따위들로 인간의 감정을 담아내고 설명할 수 있다는 말에
나는 혼자 멈춰 서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인간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한동안 네가 전부를 걸었던 것에게 언제고 다시 버려질 수 있다는 걸.
우리는 끝없이 버려질 테지만, 그 자리로 돌아와 다시 사랑하고 만다는 걸.
신이 우리를 그 자리에 앉히는 거야

 

내가 듣고 싶은 것들만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모두 듣는다.

 

내게 들리는 것은 들리는 대로 있어야 한다.
고요를 받아들이는 귀의 모양은 미로의 모양 같다.
출구와 입구가 뻔히 다 보이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이기도 하다.

 

귀는 사람에게 세상의 시작이자 세상의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을 위해서 마음을 다 쓸 때까지 옆에 있어줘야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랑하면서도 언제든 떠나갈 수 있다는 건 결국 사랑하지 않는 걸까.
어떻게 날 버린 마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람은 아름답고 쓸쓸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니
온전히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랑과 울음은 언제나 한 몸이니까.
이룰 수 없는 꿈과 같은 거니까.
그래서 걸을 때마다 찍히는 사람의 발자국과 마음은 두 개인 걸까.

 

인간이 인간으로서 견딜 수 있는 마음은 잊을 수 있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겠지.
우리 사랑이 사랑을 멈출 수 없으므로.

 

인생은 아주 초라하면서 아주 특별한 꿈을 사는 것.
보이지 않는 슬픔의 물속에서 나의 세상으로 걸어 나가는 것.
내 슬픔의 걸음이 느린 것은 태어나서 매일 처음을 만나기 때문.
그대의 오늘과 내일은 같은 날이 없고 모든 것이 처음으로 시작된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처음으로 흐른다.
다시라는 단어가 없는 시간 속에서 매일을 시작하는 처음을 가진 그대는 잊지 말기를.
우리는 다시 쓰일 수 없는 기적이라는 걸.

 

인간에게는 한번 깨지고 나면 쓸모없는 유리들과 다르게 울어도 울어도 깨지지 않는 맞춰지지 않는 조각이 있다.

 

슬픔은 가끔 너의 편이기도 해.
너의 슬픔 안에서 네가 천천히 걸어 나오기까지 언제든 기다려줄게.
네가 뭘 해야 도움이 되는지 엄마가 알면, 별도 따다 줄 수 있어.

 

슬픔은 운명 같은 걸까.
극복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걸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거야.
큰 파도가 일어나서 나를 집어삼켜도 마주 서보는 거야.
그대로 두어야 할 때도 있어. 원래 슬픔은 이해할 수 없는 거니까.
익숙한 날들을 지나가는 거라고, 내 슬픔의 리듬으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면 되는 거라고.
그리고 나의 기분대로 말해보면 되는 거라고.
뭐,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거라고.

 

살아 있는 것이라면 꼭 걸어야 하는 시간을 꿈이라고 불러도 될까.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아는 것.

 

산다는 건 숨과 같아.
숨이 붙어 있을 때까지 움직이는 거, 움직이면서 네 몸으로 해보는 거.
몸이 있으니까 넌 어디로든 갈 수 있지.
오로지 널 위해서 있는 숨이잖니.
수움, 하고 길게 발음해봐.
숨이 다할 때까지 음, 하고 생각해내는 거야.
일단 살아 있어 봐. 깨어 있어 봐. 너의 모든 감각을 열고, 길게 숨을 쉬어봐.
긴긴 숨을 쉬는 동안 끝없이 절망하겠지만, 네 옆에 있는 그 사람의 사랑의 숨을 느껴봐.
모든 건 너의 긴 숨 속에서 일어나는 꿈과 공기.
그래, 살아 있는 동안 태어난 이유를 달지 마,
너의 존재는 숨인 거야. 아주 자연스럽게.

 

가끔은 슬픔으로부터 지극히 행복한 진전을 얻는 우리들,
우리는 과연 죽은 자들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우울할 때면 죽은 자의 말들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인간이 가장 나약할 때가 초라한 나의 모습을 만나러 갈 때가 아닐까.

 

시간은 인간이 만든 환상일지도 모른다.

 

너는 아직 숨 쉬고 있다고, 혼자 엎드려 있지 말라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다고,
모두 너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우리는 끝없이 버려질 테지만, 그 자리로 돌아와 다시 사랑하고 만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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